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로넬 해전 (문단 편집) == 해전의 배경 ==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전에도 [[독일 제국]]은 비단 유럽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에까지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였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독일은 1889년 [[청나라]] [[칭다오]]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였으며, 이후 [[사라예보 사건|개전의 총성]]이 울릴때까지 캐롤라인, [[마셜 제도]], 마리아나 제도 등 많은 해외 기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의 태평양전대는 막시밀리안 폰 슈페 (Graf Maximilian von Spee) 중장 제독이 지휘하고 캐롤라인 제도의 포나페(Ponape) 항을 모항으로 하는 순양함 6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이전부터 독일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던 [[일본 제국]]이 [[영일동맹]]을 근거로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였다. 일본은 선전포고 이후 독일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칭다오를 무력 점령하며 칭다오 해전을 벌였으며, 이것으로 독일의 극동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본의 진출의 영향으로 아시아에 산개해 있던 개별 함대들의 작전 수행이 어려워지고 위험도가 높아질 것을 개전 이전부터 우려한 슈페 제독은 전쟁이 터져서 칭다오 같은 거점이 협상국 해군에 의해 봉쇄되기 전에 그의 전대를 인솔해 칭다오와 태평양 군도의 태평양전대를 이끌고 [[태평양]]을 횡단하여 남미대륙 서해안을 경유해 [[마젤란 해협]]을 거쳐서 대서양으로 진입하여 독일로 귀항하는 원거리 항해를 진행하면서 [[통상파괴전]]을 수행하는 계획을 입안하였다. 또한 그는 경순양함 [[SMS 엠덴|엠덴]] (SMS Emden)을 [[인도양]]으로 파견해 통상파괴전을 수행하게 하였다. 한편 영국은 자신들이 설정한 봉쇄선 밖에서 독일 함정들이 실시하는 통상파괴전에 고심하며 이들을 물리치려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당시 남대서양의 함대를 지휘하던 영국 순양함전대 사령관 크리스토퍼 크래독 (Sir Christoper Cradock) 소장 제독은 예하 함정들을 인솔해 [[포클랜드]]를 출항한 후 마젤란 해협을 통과, [[태평양]]으로 진입하여 북쪽 침로를 취하면서 독일의 슈페 전대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물론, 그들이 귀항하기 전에 전대를 격침시키기 위함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